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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으로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비상계엄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비상계엄에 관해 공유해드리겠습니다. 또한 역대 비상계엄의 사례에 대해 알아보며,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비상계엄

    비상계엄이란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의 필요에 의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선포하는 계엄을 말합니다.

    헌법 제77조 1항, 계엄법 제2조 2항이며, 비상계엄의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 안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합니다.

    국회의사당대통령실
    국회의사당

    비상계엄 선포 절차

    대통령의 선포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고려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이 과정에서 국무회의와 심의를 거쳐서 하게 됩니다.

    국회에 통보

    대통령은 계엄 선포 즉시 국회에 이를 통보해야 합니다.

    국회가 계엄을 즉시 해제할 것을 요구하면 대통령 또한 이에 즉시 따라야 합니다.

    계엄지역 설정

    계엄을 필요한 지역에 한정하여 선포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지역을 확대 또는 축소할 수 있습니다.

    계엄군 사령관 임명

    대통령은 계엄군 사령관을 임명하고 계엄의 시행 및 운영에 대한 권한을 위임합니다.

     

    비상계엄 해제 절차

    비상계엄이 발효된 이후 해제를 하게 될 때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황 점검

    비상계엄의 목적이 달성되거나, 계엄 선포의 사유가 소멸되었는지 판단합니다.

    이를 위해 계엄의 효과와 국가 안정 상황을 평가합니다.

    ​대통령의 해제 명령

    계엄 해제는 선포와 동일하게 대통령의 명령으로 이루어집니다.

    계엄의 종료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면, 계엄의 효력이 소멸됩니다.

    국회의 해제 요구

    국회는 계엄의 해제를 요구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이에 따라야 합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면 대통령은 즉각 계엄을 종료해야 한다.

    재적의원 300명 중 150명 찬성을 할 때 계엄 해제 요구가 성립됩니다.

    ​해제 후 조치

    계엄이 해제되면, 계엄 상태에서 제한되었던 권리와 자유는 즉시 복원됩니다.

    계엄 시행 과정에서 발생한 법적, 행정적 문제에 대한 사후 조사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계엄군 사령관의 권한은 해제와 함께 종료되며, 통상적인 행정 및 사법체계가 복원됩니다.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비상계엄 해제의 중요성

    헌법 질서 회복

    비상계엄은 헌법적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이므로, 사유가 해소되면 즉각 해제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복원해야 합니다.

    민주적 통제

    국회의 계엄 통제 권한은 민주적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계엄의 남용을 방지합니다.

    사회 안정과 신뢰 회복

    계엄 해제 후 투명한 과정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의 정상적인 행정 운영을 보장해야 합니다.

     

    역대 계엄 사례

    1948년 10월 25일 헌정사 첫 계엄령

    대한민국 정부 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25일 여수, 순천에서 제주도 출동을 위해 주둔 중이던 국방경비대 14 연대에서 명령을 거부하고 도시를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벌어졌습니다. 계엄령은 여수, 순천에서 다음 달 제주도로 확대되며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1950년 7월 8일부터 1952년 4월 7일까지 비상계엄 2차례 경비계엄 2차례 각각 발령되었습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서울에서 4시간 동안 경비계엄이 발령되었습니다. 이후 6월 7일까지 51일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선포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시기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따른 4.19 혁명 때까지 모두 10차례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 11번째 계엄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진행하면서 대한민국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군사정변으로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박정희 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1964년 6월 3일 항쟁 당시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964년 한일 협정 반대운동이 격화된 데 따른 계엄선포였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0월 유신을 통해 헌법 개정을 했습니다. 이때 헌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1979년 10월 18일에는 부산 마산 항쟁에 따라 부산 경남 지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으며,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 서거한 직후 비상계엄이 발령되어 1981년 1월 24일까지 440일간 유지되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민주화 운동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 부르기도 하는 1980년 5월 18일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가 서울에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 계엄령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삼권분립이란?

    삼권분립
    삼권분립

    삼권분립 또는 권력분립은 국가의 권력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셋으로 분리하여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입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질서 회복을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와 같은 조치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비상계엄의 법적, 사회적 측면을 신중하게 바라보아야 하며,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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